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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책

다시 벌떡 일어나라 (최용우) 햇볕12

by 최용우 2021. 6. 4.

책 구입<다시 벌떡 일어나라>336 12400 https://c11.kr/cyw02

 

저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불 속에서 단 10초도 꼼지락거리지 않고 오른손 왼손으로 이불의 양쪽 끝을 잡고 1초만에 벌떡 일어나 5초만에 이불을 착착 개 버립니다. 그런 모습을 아내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그렇게 하면 몸에서 갑자기 열이 빠져나가 혈압이 높은 사람들은 큰일 날 수 있다고 극구 말립니다.
왜 제가 아침에 깨서 일어나는데 걸리는 시간이 10초도 안 결렸냐 하면, 잠에서 깨었다는 느낌이 싫은 거에요. 이불 속의 그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속에서 벗어나기도 싫고 해서 그 ‘싫은 느낌’이 오기 전에 그냥 벌떡 일어나버리는 방법을 쓴 것이지요. 어차피 일어날 거 이불 속에서 알을 품으며 시간낭비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제 아내는 항상 저보다 먼저 일어나기에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옆에서 붙어 자도 잠들어 버리면 모르잖아요. 잠들기 전에는 ‘자기 사랑해’ 어쩌고 하면서 마주보고 자도 자다가 오줌 마려워 깨보면 각자 자기 편한 대로 등 돌리고 잡니다.
잠들면 모릅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굉장히 신비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식과 무의식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의식이 또렷해지려는 그 순간에 비몽사몽(非夢似夢)하면서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으로 엿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깨어남의 신비입니다.
일어나기 ‘싫은 느낌’은 그 ‘깨어남의 신비’ 를 잘 모르고 무의식에서 의식으로의 강제 전환시키려는 그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저도 모르게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싫다’는 느낌으로 뇌에 저장된 것이지요.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는 과정도 아침에 일어나는 과정과 비슷한 것 같아요. 잠들어 있으면 모릅니다. 조금씩 조금씩 ‘깨어나야’ 그 깨어남의 신비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벌떡 일어나라’로 정했습니다.
이런저런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은 움직이지 않고 드러누워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드러누우면 밑바닥만 보입니다. 세상이 온통 불평불만과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차있는 것이 보이고, 일순간 그런 현상에 동화가 되면 신앙의 가치관과 목표까지도 희미해져 버리지요.
드러누워서 세상의 밑바닥만 쳐다보니 세상에 온통 더러운 것만 보이고, 사회의 부조리만 보이고 세상이 자기만 왕따시키는 것 같고, 자기만 손해 보는 것 같아 순식간에 염세주의에 빠지고 맙니다.
드러누워 자빠져 있는 자들에게 진리이시고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명령합니다.
“벌떡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눅5:24)
벌떡 일어나서 뛰어야 삽니다. 벌떡 일어나면 세상의 온갖 불평 불만 투성이 꿈과 희망으로 변화됩니다. 벌떡 일어나 바라보는 세상은 밑바닥이 아니라 위를 올려다보는 넓은 세상입니다.
저 자신도 벌떡 일어나야 하고, 한국 교회도 벌떡 일어나야 하고, 이 나라도 벌떡 일어나야 합니다.

 

<추천사>

‘띵동’
“우체부입니다. 한국에서 소포가 왔습니다.”
일본까지 햇볕같은이야기를 배송해 주시는 최용우 전도사님을 축복합니다. 인터넷으로 읽는 글도 은혜이지만 책으로 읽는 글은 더 좋습니다. 쉽지 않은 일을 하시는 최전도사님을 여러분께 추천합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죠. 최전도사님은 저에게 가족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분입니다. 아니, 가족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곁에 앉아 있기만 해도, 아무 말 없이 함께 있기만 해도 마음이 통하는 분입니다. 그만큼 심령이 깨끗한 분입니다. 커피 한잔 내 놓고 온 종일 얘기를 나누고 싶은 분입니다. 한국에 있을 땐 늘 달려가서 함께 있고 싶을 정도로 든든한 고목처럼 언제나 자기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분입니다.
최용우 전도사님은 항상 긍정 에너지가 솟구치는 분,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셔서, 집안에 예수님 앉으시라고 <예수님 의자>까지 마련해 놓으신 분, 산과 자연을 너무 사랑해서 산에서 주님과 동행하시는 전도사님.
들에 핀 작은 들꽃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말을 거는 분.
벌써 십수년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해 주신 최용우 전도사님의 책에 글을 올리게 되니 너무 기쁩니다. 전도사님의 가족이 기도하며 응원하는 소리가 일본에 까지 들립니다. 어떤 때는 꿈에도 나타나시네요. ㅎ
전도사님은 해외에서 사역하는 사역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매월 펴내는 월간<들꽃편지>와 함께 대여섯권씩 책을 소포로 보내주십니다. 한글이 그리운 해외 사역자들에게 이보다 더 귀하고 반가운 후원은 없습니다.
한국에서 소포가 배송되어 오면 커피 한잔 진하게 타 놓고 <들꽃편지>부터 꼼꼼하게 정독을 하면서 한국 생각에 푹 빠집니다. 전도사님이 늘 하던 말이 있죠. “영은 파장이 있어서 같은 파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편하다.”고요. 그런데 전도사님의 영은 어떤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든 스펀지처럼 다 흡수해버립니다.
최용우 전도사님이 쓴 글들은 깊은 산속에서 졸졸졸 흘러나오는 샘물처럼 마시면 마실수록 더 마시고 싶어지는 ‘옹달샘’같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 아까워 몰래 숨겨놓고 혼자만 마시고 싶을 정도로 시원하고 기가 막힌 맛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여 예수님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싶어 하는 몸부림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이란 말이 있습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뜻으로, 중국 한(漢)나라의 장군 조충국(趙充國)이 한 말을 저도 하고 싶습니다. 최용우 전도사님의 어떤 책이든 글이든 한번만 보면 재미있고 기발하며 생생하게 살아있어 영혼을 깨우는 펄떡이는 글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령이 메마르고 굳어진 이 때에 하나님께서 최전도사님을 세상에 드러내셔서 햇볕처럼 따뜻한 영성의 글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심령에 예수의 빛을 비추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진심으로 응원하며 축복합니다. 
이재익 목사   (일본 니이가타교회)

 

책 구입<다시 벌떡 일어나라>336 12400 https://c11.kr/cyw02

 

<목차>

1부.다시 벌떡 일어나라

2부.호연지기를 기르라

3부.아름답고 행복한 삶

4부.그럴수도 있겠네

5부.당신은 어떤 사람이죠?

6부.십자가의 가르침

 

1.다시 벌떡 일어나라

 

타락한 국민, 부패한 나라, 왜곡된 사회 문화 현상을 바라보며 그것을 지적하는 동시에 그것을 변화시키는데 앞장서야 하는 곳이 기독교인이고 교회입니다. 그런데 지금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그것을 전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파수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이사야56:10)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치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에스겔34:8)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정부 고위직과 국회에, 여당과 야당에, 재계에, 학계에 여기저기 지도자의 자리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앉아 있지만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예레미야처럼 국민들의 죄와 교회의 죄를 지적하고 부르짖으며, 통곡하며, 예언해야 하는, 눈물의 선지자는 다 어디로 가버렸습니까?
예배당 짓는 일에만 열심이고 ‘절대 양심’을 저버린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총체적인 범죄와 타락과 무질서, 그리고 혼란의 주범처럼 여겨지니 이 더욱 가슴 찢어지는 일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요?
죄를 지었는데도 징계가 없다면, 그 의미는 두 가지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무던한 사랑이고, 또 한 가지는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포기하고 망하기를 기다리는 버린 카드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 일까요?
우리 다시 벌떡 일어납시다.


2.계획을 세우되


새해가 되면 이런 저런 계획을 많이 세웁니다.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럴지라도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은 계획이 필요합니다. 비록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일단 무슨 일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유익이 있습니다.
계획을 너무 철저히 세우면 계획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완벽한 계획을 세우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기도 힘듭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운 대로 진행된다면 좋으련만, 우리의 삶은 바라는 일보다 바라지 않은 일이 더 많이 생깁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생각지 못했던 일이 더 많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획을 세우되 대충 세우세요.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시도록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여지를 더 많이 남겨 두세요. 그럼


3.담대한 믿음


사람들이여 언제까지 나를 부끄럽게 하려는가? 언제가지 잘못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된 신들을 따르려는가? 셀라 -시편4:2
계몽주의 신봉자였던 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무신론자였습니다. 카톨릭이건 기독교건 종교를 가진 자들은 마음이 약한 비겁한 겁쟁이라고 조롱하는 왕이었습니다. 그 왕에게는 본진랜드라는 용감한 대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하루는 지방 귀족들이 모두 모인 큰 연회가 벌어졌습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프리드리히 대왕은 천박한 야유를 섞어 가면서 기독교를 비웃자 사람들은 그에 동조하여 연회장은 온통 기독교를 조롱하는 말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대장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왕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폐하! 폐하께서는 제가 폐하를 위하여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 서른여덟 번을 싸워 이긴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제 저는 늙어서 곧 폐하께서 조롱하시는 그분을 뵈러가게 될 것입니다.
제가 폐하를 위해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싸웠듯이, 그분을 위해 폐하를 무서워하지 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은 폐하보다 훨씬 더 위해하신 분이십니다. 폐하는 그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십니다.”
왕에게 엄청난 무례함을 범한 것입니다. 천하의 대왕 앞에서 이런 엄청나게 버릇없는 태도와 당돌한 말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프리드리히 대왕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본진랜드 장군! 내가 잘못했소. 나를 용서하시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4.새벽우물


옛날 우리 동네 한 가운데에는 깊은 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동네 사람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우물가는 동네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었던 장소였습니다.
목이 마른 사람들은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벌컥거리며 마셨고, 일하다 말고 달려와 시원하게 등목을 하기도 했고, 여자들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며 왁자지껄 떠들며 즐거워했습니다.
동네잔치가 있는 날에는 남자들이 우물가에 모여 돼지를 잡으며 갑론을박 이야기꽃을 피웠고, 어느 날은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고, 어느 날은 우물가에 옹기종기 모여 동네 이장을 뽑기도 했습니다.
아, 그리고 저는 어떤 형과 누나가 그날 밤 우물가에서 한 일을 알고 있습니다. 결국 연분이 나 두 분은 혼인을 했습니다.
우리 집은 바로 시암(‘우물’의 전라도 사투리)옆에 붙어있었습니다. 시암옆 집 아들인 저는 우물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자랐습니다.
일을 마친 저녁이면 집집마다 물동이를 이고 나와 저녁밥과 다음날 새벽밥을 할 물을 길어갑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지 우물 바닥이 보이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른 새벽 살금살금 다가가 우물 안을 들여다보면 밤새 층층히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새벽 하늘을 투명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퍼내어도 마르지 않고 다음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찰랑찰랑 물이 고이던 신비한 새벽의 우물! 새벽우물처럼 시원하고 넉넉하고 변함없는 삶을 살면서 그런 삶을 닮은 글도 쓰고 싶습니다.


5.씨부렁 씨부렁


온 세상이 꽁꽁 얼어 붙어버렸습니다. 방문을 열면 찬바람이 싸-하게 밀려들어옵니다. 해가 짧아 밤은 길고... 긴긴 겨울밤 견디다 못한 우리 집 백성들이 뭐든 먹을 것을 내 놓으라고 난리났습니다.
옛날에는 부엉이 우는 긴긴밤 시원한 동치미국물에 고구마를 구워먹고, 메밀묵, 찹쌀떡, 연시나 무를 깎아 먹었는데, 요즘 겨울 간식거리는 24시간 편의점에 다 있습니다.
소일거리가 변변치 않았던 옛날에는 긴긴 겨울밤 동네 사랑방에 모여 앉아 사그락 사그락 새끼를 꼬았지요. 새끼는 주로 남자들이나 머슴들이 꼬았습니다. 밤 조차도 편히 쉬도록 놓아두지 않고 일을 시키는 주인에게 불만이 많아 굼시렁 거리는 소리가 새끼 꼬는 소리와 합쳐지면 그 소리가 ‘씨부렁 씨부렁’ 하고 들립니다.
주인의 귀에 씨부렁 씨부렁 소리가 들리면 얼른 간식거리를 내 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버티는 주인의 귀에는 한 참 후에 ‘미주알 고주알’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작업 속도가 느려지고 성의 없어지며 주인을 흉보기 시작하면 그 소리와 새끼 꼬는 소리가 합쳐져 ‘미주알 ~ 고주알 ~ 미주알 ~ 고주알 ~’ 하게 됩니다. 설렁설렁 대충대충 미주알 ~ 고주알~
설렁설렁 씨부렁씨부렁 미주알고주알... 이 소리들이 모두 겨울밤 새끼 꼴 때 나는 소리들입니다. 새끼 꼬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겠지요?
우리 집 여성 동무들의 입에서 씨부렁 씨부렁 미주알 고주알 소리 나오기 전에 저를 시베리아 북풍한설에서 지켜 줄 두툼한 잠바를 서둘러 입습니다. 따끈한 오뎅이나 호빵이 좋겠지요? 겨울밤은 밤은 깊어가고


6.새로운 길을 내는 자


야고보 사도가 말했습니다.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2:18)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2:24)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2:25) 야고보의 고백을 근거로 ‘행함’을 따라 구원의 길을 가는 종교가 카톨릭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했습니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8)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롬3:30)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14:23)” 바울의 고백을 근거로 ‘믿음’을 따라 구원의 길을 가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요한 사도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일4:7)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요이1:5)
요한의 고백을 근거로 ‘사랑’을 따라 구원의 길을 가는 종교가 머지 않아 등장할까요?
꽁꽁 얼어붙은 세상은 따뜻한 사랑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새로운 길을 낼지도 모릅니다.


7.세상에서 가장높고 험한 산


저는 등산을 좋아합니다. 최근에 오대산, 상당산, 백암산을 올랐고 1월중으로 태백산 오르려고 준비중입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산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한라산, 백두산, 설악산, 지리산, 심지어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국에 있는 이 산 만은 쉽게 오르지 못합니다.
오르다 보면 악 소리가 난다는 ‘치악산, 설악산, 월악산’보다도 더 오르기 힘든 산, 그 이유는 신기하게도 산의 높이가 수시로 변하는 요상 망측한 산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땐 하루 아침에 몇 배씩 높아져버리는 경우도 있어서 오르려고 마음먹었다가도 포기하고 마는 산입니다.
한국에서는 이 산을 정복했느냐 못했느냐에 따라 사람의 능력이 평가되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 산을 정복하기를 갈망하지만 이 산을 오르려다가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심지어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저도 아직 이 산을 바라만 볼 뿐 정복할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이 산 이름은 ‘부동산’입니다. 부동산에 오르기 위한 자격증인 ‘부동산공인중개사’ 시험에 그동안 1천만명이 응시를 했다는 것만 봐도 이 산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싶어 하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힘들다 라는 말은


어떤 일이 힘들다는 것은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피곤하고, 싫고, 짜증나고, 화가 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야 할 에너지가 막혀 있거나 딴 곳으로 허비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 우리는 힘들게 살까요? 피곤하게 살까요? 왜 고달플까요? 왜 짜증이 날까요? 자연스럽게 흘러야 될 에너지가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천하우주만물과 공중에 나는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세요. 산 속의 토끼를 보고 물 속의 물고기를 보세요. 그것들이 힘들다고 휴가 가는 것 보셨어요? 못 봤지요? 자연은 언제나 에너지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서 막히는 법이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살지 않고 인위로 살기 때문에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입니다. 에너지가 흘러가는 대로 몸과 마음을 내맡기면 되는데, 에너지의 흐름을 인위로 바꾸려 하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허허 실실 이라...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짓만 안 해도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을 50%는 막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일만 그만 두어도 낭비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기준이나 틀에 나를 맞추지 말고 내 기준은 나에게 맞도록 맞춤으로 스스로 만드세요. 그래야 에너지 낭비 없이 빵빵하고 쌩쌩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9.웃는 시간을 가져라


미국의 명 칼럼니스트인 앤 렌드스의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라’는 칼럼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네요.
1.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라. 사고는 힘의 근원이다.
2.노는 시간을 가져라.   놀이는 변함없는 젊음의 비결이다.
3.책 읽는 시간을 가져라.   독서는 지혜의 원천이다.
4.기도하는 시간을 가져라.   역경을 당했을 대 도움이 된다.
5.사랑하는 시간을 가져라.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6.우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라.   생활에 향기를 더해준다.
7.웃는 시간을 가져라.   웃음은 영혼의 음악이다.
8.나누는 시간을 가져라.  주는 일은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
9.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가져라.  삶에 활력을 줄 것이다.
웃는 시간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웃으면 건강과 기쁨이 샘솟기 때문입니다. ^^


10.텔레비전 바보들에게


요즘 사람들은 삶의 즐거움을 어디에서 얻을까요? 텔레비전입니다.
텔레비전보다 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개그 프로그램이나 쇼, 스포츠, 드라마를 보면서 희희락락(喜喜樂樂) 낄낄낄 깔깔깔 푸헤헤 거리며 정신을 팔아먹고 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몇 초만에 웃음을 빵 터트려 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채널이 다른 데로 넘어가 버립니다. 그렇게 이리저리 한 순간의 즐거움을 찾아 채널을 돌리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주는 즐거움은 뿌리 없는 꽃과 같습니다. 마치 꽃병에 꽂아 놓은 꽃과 같아서 결국엔 버리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 성숙에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 영성을 메마르게 합니다.
영속적이고 영원한 마음의 즐거움, 마음 깊은 곳에 기쁨을 가득 충만하게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 마음에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성경구절이 20곳 이상 성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 시트콤이나, 버라이어티, 드라마보다도 더 빵빵 터지는 기쁨이 바로 말씀 묵상 가운데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5:11)


11.친절한 사람들


남을 도와주었을 때 정작 도움을 받은 그 사람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도와준 사람은 도와준 만큼 자신에게 반드시 이익이 있습니다.
선행과 친절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서 감사의 보답은커녕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 때문에 섭섭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행과 친절을 베푼 그 보답은 다른 사람에게서라도 반드시 받게 됩니다.
중고등학생들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 억지로 ‘봉사’를 하고 ‘봉사 확인서’를 받아갑니다. 정말 토요일 아침 한 참 자야하는 시간에 사형장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일어나 억지로 봉사장으로 갑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봉사를 해 본 사람과 전혀 봉사를 하지 않은 사람은 다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친절함은 커다란 힘을 갖고 있습니다.
친절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친절함을 기쁨으로 받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지라도 친절함을 포기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별명은 ‘친절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2.우리나라 35가지 요리법


유럽 여행을 하면서 음식점에 들어가 요리를 주문하면 “요리를 어떻게 해 드릴까요? 로스트, 스테이크, 브레이즈, 스튜?” 하고 묻는다고 하더군요. 건식을 하는 나라의 음식 요리 방법은 몇 가지 안 됩니다.
미식가의 나라인 프랑스 사람들도 요리법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반면에 습식을 하는 우리나라는 요리 방법만 해도 장난이 아니지요.
만약 유럽처럼 손님이 원하는 대로 음식을 만들어 준다면
“손님! 어떻게 요리를 해 드릴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음식을
갈아먹고, 걸러먹고, 고아먹고, 구워먹고, 까먹고, 깎아먹고, 끄슬려먹고, 날로먹고, 내려먹고, 눌려먹고, 덖어먹고, 데워먹고, 데쳐먹고, 말려먹고, 묵혀먹고, 볶아먹고, 부쳐먹고, 비벼먹고, 삭혀먹고, 삶아먹고, 섞어먹고, 싸먹고, 쑤어먹고, 씻어먹고, 우려먹고, 재워먹고, 조려먹고, 지져먹고, 쪄먹고, 찜해먹고, 찧어먹고, 타먹고, 태워먹고, 튀겨먹고, 포떠먹고... 대충 이렇게 먹는답니다.”

와...머야? 외국 사람들이 머리가 핑핑 돌겠지요?
하하하하하 우리나라 참 대단한 나라입니다.
35가지를 다 찾아 낸 나도 대단합니다.^^ 


13.말을 안 들으면


“여러분, 전도할 때 사람들이 하나님을 쉽게 받아들이던가요?”
“아니요”
“그럼, 그럴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지요?”
“뭐.. 그저”
“제가 좋은 방법을 한 가지 알려 드릴게요. 말로 해서 안 들으면 그냥 패버리세요....”
“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렇다고 진짜 주먹을 휘두르면 큰일 납니다. 제 말은 마음속으로 때리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마귀가 그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마귀를 짓밟아버리세요. 악날하게!”
“오... 그런 방법이...”


14.아버지


주기도문은 전체적으로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신학적으로 Doxology라고 하는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 는 것을 먼저 구하는 부분이고, 후반부는 우리 개인을 위해서 필요한 것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첫 부분은 “파테르(아버지여) 헤몬(우리의) 호(그) 엔(안에 계신) 토이스(그) 우라노이스(하늘들)” 입니다. 직역하면 ‘하늘들 안에 계신(분이신) 우리의 아버지시여’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고 시작하는데, 원문에는 “아버지!” 하고 시작합니다. 편지를 쓸 때 헬라 사람들이나 미국 사람들은 To. 하고 받는 사람 이름을 쓴 다음 주소를 쓰는데, 우리는 그 반대로 주소부터 쓴 다음 이름을 뒤에 쓰는 차이입니다.
파테르! 아버지!
기도는 편지인데 그 편지를 받을 분이 To. 파테르! 아버지라 그 말입니다. 그래서 큰소리로 아버지! 하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어디에 대고 기도하는지도 모르는 허공을 치는 기도를 하지 마시고, 기도를 받을 주소를 확실히 해야 됩니다.
아버지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분은 아버지시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해야 됩니다.
따라서 해 보세요. “아버지!”


15.낮에 일하고 밤에 자고


요즘 ‘만성 피로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요. 사람이 밤낮 일에 치여 늘 지친 몸을 이끌고 사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게 되기 쉽고 마음마저 지치면 사는 것이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자신을 강철 로봇이라 착각하여 밤낮 없이 자신을 부려먹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을 그렇게 기계처럼 부려먹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라가 점점 부강해지고 살기 좋아진다고 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스트레스가 쌓이고 피로가 누적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점점 부강해지고 잘 사는 것을 포기하거나 그 속도를 늦추어 천천히 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밤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밤은 어둠 가운데 모른 것을 없애버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시달리고 스트레스가 쌓였다 하더라도 밤에만큼은 다 잊어버리고 일찍 푹 자야 합니다. 그래야 신생! 다음날 새롭게 태어납니다. 밤 시간마저도 일로 빼앗아 가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16.잘했다 잘했어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른팔이 잘리거든 왼팔이 남아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라. 왼팔도 잘리거든 다리가 남아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라. 양다리도 잘리거든 목이 잘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라.’
방학 동안에 빈둥빈둥 게으름뱅이가 되어버린 작은딸 밝은이를 보다 못한 엄마가 가서 문제집이라도 사와 풀어라! 하며 1만원을 쥐어 주었습니다.
주머니에 만원짜리를 넣고 만지작거리며 어슬렁어슬렁 문방구점에 도착한 밝은이가 주머니에서 손을 빼보니 아 이런, 돈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밝은이가 왔던 길 되돌아오며 눈을 부릅뜨고 돈을 찾았지만, 길에서 떨어뜨린 돈이 그대로 남아 있을 리가 없지요. 누군가가 “이게 웬떡이냐” 하며 냉큼 주워가 버렸겠지요.
“니가 무슨 재벌 딸이냐? 참, 어이가 없네” 엄마가 할 수 없이 1만원을 다시 줍니다. 그리고는 애써 좋게 생각합니다.
“오늘 정말 만원이 간절히 필요한 어떤 사람이 만원이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길에 만원이 떨어져 있는 거야. 그걸 주우면서 얼마나 기뻤겠어? 내 참!”  억지로 그렇게 생각하니 밝은가 오늘 어떤 사람의 천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네요. ㅎㅎ 


17.가장 아름다운 말


 큰딸 좋은이는 엄마를 부를 때 “엄마 엄마 엄마...” 꼭 두 세번씩 연속해서 부릅니다.
작은딸 밝은이는 엄마를 부를 때 송아지처럼 “음마” 하고 부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엄마”라는 말입니다.
좋은이는 아빠를 부를 때 귀청이 떨어지도록 “아 뽜!” 하고 씩씩하게 부릅니다.
밝은이는 여우처럼 아양을 떨며 “압빠” 그렇게 불러 놓고 꼭 돈 내놓으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말은 “아빠”입니다.
“야. 동생이 되어 가지고 언니 말도 잘 안 듣냐?”
“언니 - 언니가 되어 가지고 동생 용돈도 안 주냐?”
이 세상에서 가장 허물없는 말이 언니, 동생입니다.
엄마! 아빠! 언니! 동생! 시끌벅적 야단법석 요절복통
이 세상에서 가장 정다운 말은 “우리 집”입니다.


18.아바타와 성경


영화 ‘아바타’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첫눈에 ‘뉴에이지 영화’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1천만명이 보았다는 ‘아바타’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가 집에 놀러 온 목사님 가족들과 함께 한참 뒤에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예상했던 대로 자연을 숭상하는 범신론적 사상에 나비족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에이와’를 부르며 주술을 외우는 장면등은 전형적인 ‘뉴에이지’ 영화였습니다.
영화 관람 후 제 눈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습니다. 전혀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두 눈으로 보고야 만 것이니까요. 영화관을 나오면서 가족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대단하다.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영화를 보면 정말 판도라의 행성 같은 딴 세상이 있다고 믿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사실적이고 생생했다. 다른 세상인 천국과 지옥을 저와 같이 경이로운 화면으로 영화에 담아낸다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런데, 성경 속에는 ‘아바타’ 정도로는 게임이 안될 정도로 무궁무진하고 엄청난 상상의 세계가 들어있습니다.
트리니티신학교 학장인 브리저 교수가 슨<해리 포터의 영성>이라는 책에 보면 세계3대 환타지라고 하는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헤리포터’ ‘반지의 제왕’도 자세히 보면 성경적 세계관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성경은 ‘아바타’에 비할 수 없는 놀라운 ‘상상력’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비밀의 책이라는 뜻입니다.
아, 그런데 나는 어째 그런 엄청난 책을 보면서 하품만 쩍쩍 하는지... 그런 나는 도대체 뭐냐?


19.너무 늦었어요


어느 날 실존주의 철학자 칸트에게 한 여인이 청혼을 했습니다. 칸트도 은근히 좋아하던 처녀였는데, 칸트가 청혼을 하지 않자 처녀가 먼저 용기를 내 청혼을 한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대답한 칸트는 그날부터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으로 달려가 사랑과 결혼에 관한 책을 모두 찾아 공부했습니다.
마음의 사랑과 머리의 사랑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한 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혼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한 책도 한 권 썼습니다.
결혼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고찰했습니다.
결혼을 쉽게 성공적으로 잘 하는 방법에 대한 긴 글을 탈고하였습니다.
그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마침내 그녀의 청혼을 받아들여야겠다고 결정을 하고 꽃다발을 들고 처녀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칸트는 그녀가 기다리다 못해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서 벌써 자녀를 셋이나 낳은 엄마가 되었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20.특별한 자존감


누구에게나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몇 가지씩은 다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기억에도 없을 그 일이 나에게는 조금도 퇴색되지 않고 늘 생각나는 그런 기억 말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기억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여자 동창들에게 정말로 말 한마디도 걸어보지 못한 쑥맥이었던 저에게 연분홍 연애편지가 2천통이나 날아온 사건입니다.
당시에 ‘소년중앙’이라는 월간 잡지가 있었는데, 우연히 저의 무슨 글 한편이 실렸습니다. 그 글 아래 달려 있던 주소를 보고 전국에 있는 여학생들이 소위 말하는 ‘펜팔 편지’ 뭐 그런 것을 엄청나게 보내온 것입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우체부 아저씨가 동네사람들에게 우리 집을 물어물어 찾아와 제 이름이 적힌 편지 한 통을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생전 처음 받아본 편지! 그 첫 편지의 주인공인 경남 함안의 ‘김정애’라는 여학생의 이름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는 편지가 한 다발씩 날아왔습니다. 나중에는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 집에 오는 편지만 따로 담는 봉투를 만들어 거기에 한 봉투씩 담아 가지고 와 마루에 부어 놓고 가곤 했습니다. 그 뒤 라면상자에 담아놓았던 편지를 일일이 세어보니 2천통이 훌쩍 넘었습니다. 편지들을 학교에 가지고 가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친구들 앞에서 우쭐댔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군요.
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찬란했던 순간을 제 생애에 다시 한번 재현해 보고 싶습니다.^^


21.옛날사람들은 똑똑했다


옛날 사람들은 고리타분하거나 무식하고, 현대인들은 똑똑하다는 생각은 진짜 뭘 모르는 편견에 불과합니다. 현대인들이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옛날 사람들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13세기 사람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사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신’에 대한 인식은 천주교든 기독교든 거의 모두 13세기 사람 토마스 아퀴나스가 쓴 ‘신학대전’ 안에 있는 것을 장군멍군하고 있을 뿐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쓴 글 안에 어떤 부분을 가지고 한 교파를 이루기도 하고, 신학사상을 만들기도 하고, 혹은 아퀴나스의 글을 반대하는 노선을 만들기도 하고... ‘신학대전’을 읽어본 일도 없는데 어떻게 그 영향을 받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신학대전의 양은 약 600페이지 되는 책 36권 분량이라고 대답하겠어요. 신학자가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양입니다. 그 엄청난 양의 글 안에는 우리가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중기 쯤 해당하는 호랑이 담배 피다 가죽 태워먹던 까마득한 옛날에, 그것도 한 사람이 썼다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우리가 아무리 핸드폰을 만들고 우주선을 만들어내는 똑똑한 머리를 가졌다고 해도 아퀴나스의 머리에 비하면 우리의 머리는 그냥 어깨 위에 올려놓은 돌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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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당신은 좀 특별하군요


“당신은 뭔가 다른 사람들과 달라요. 당신의 믿음은 최고입니다. 당신은 아주 영적인 사람입니다. 당신같이 순수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이 시대가 많이 타락했지만 당신은 정말 신선합니다. 당신은 정말 지혜롭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을 깨달았나요? 당신은 정말 억울하군요. 왜 사람들이 당신을 몰라준단 말입니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이 헤벌레 해져가지고 좋아서 죽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자기가 그런 사람인줄로 착각하는 순간! 그의 영이 마비되기 시작하면서 마귀의 종이 됩니다.  마귀는 그런 유혹의 말을 하는데 아주 능숙한 존재입니다. 마귀의 말에 속아서 자칭 하나님이 되어 아주 대놓고 교주 노릇을 하는 사람이 한국에만 서른 명이 넘고, 교주 흉내를 내는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혹 저런 칭찬의 말을 들으면 바보같이 좋아하지 말고 그 얼굴에 침을 택 뱉어 주세요. “싸탄아 물러가라!” 안 그러면 큰일납니다. 세상에 돼지를 사랑해서 키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잡아먹으려고 밥 줘가며 잘 키우지요. 물고기를 사랑해서 밑밥을 뿌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고기를 유인해서 잡으려고 밑밥을 뿌립니다. 마귀의 밑밥을 보고 춤추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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