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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책

인생 최대의 행복(최용우) -햇볕16

by 최용우 2021. 6. 5.

  책구입 클릭! <인생 최대의 행복>316쪽 11800원 https://c11.kr/cyw06

 

<책소개>

 

친구가 “네가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뭔지 모르겠다. 보면 맨날 산에나 다니고... 나처럼 직장에 찌들린 사람은 네가 사는 모습이 할 일 없는 한량처럼 느껴진다. 넌 뭐하고 사냐?” 하고 물었습니다.
“나? 나는 아무 일 안하고 잘 사는 사람이지. 자네 햇볕같은이야기 홈페이지에 들어와 내가 쓴 글 한번이라도 읽어봤어?”
읽어봤는데 좋은 글만 잔뜩 있고 뭐... 요즘엔 어디가나 좋은 글이 널려 있어서 핸드폰만 켜면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봐도 요즘엔 정말로 좋은 글이 여기저기 사방 천지에 널려 있습니다. 다들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그런데 내 친구는 햇볕같은이야기에 들어와서 좋은 글만 읽고 나갔나 봅니다. 그런데, 햇볕같은이야기에는 좋은 글이 없습니다. 제가 좋은 글을 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디에서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하다못해 무슨 문예지 등단을 한 적도 없고 있다면 중2때 ‘소년중앙’이라는 월간지에 전국글짓기대회에서 장원을 한 적이 있을 뿐입니다.
저는 좋은 글을 써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제가 주제파악 하나는 잘 합니다. 저는 오직 주님을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을 뿐입니다. 어느 때는 선명하게 드러내고 어느 때는 희미하게 드러내고 어느 때는 살짝 숨기고... 제 글쓰기의 목적은 그것뿐입니다.
저는 ‘주님에 대한 글’을 쓸 만큼 학문적으로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에 대한 글’은 공부를 많이 한 학자들이 써야지 제가 쓸 글이 아닙니다.
저는 ‘주님에 대한 글’이 아니라 ‘주님의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한적한 숲길을 홀로 4시간 5시간씩 걸으면서 만난 주님, 한 시간씩 마라톤을 하면서 육체의 고통가운데 명료하게 말씀하시는 주님... 깊은 밤에 그림자처럼 다가오시는 주님과의 깊은 만남...
이런 주님의 이야기를 글 속에 비누거품처럼 조금씩 조금씩 풀어내는 글을 쓸 뿐입니다. 영혼이 맑은이들은 제 글 속에 비치는 그러한 의도를 눈치 챕니다. 그리고 마치 중독된 듯 날마다 제 글을 읽는다고 합니다.
제가 쓰는 글은 그냥 보면 좋은 글처럼 보이지만 좋은 글이 아닙니다. 영혼이 떨리는 울림입니다. 주님 말씀 한 줄 얻고 싶어서 험한 산 바위를 한 시간씩 기어오르는 그 고통을.... 잘 모르는 사람 눈에는 한량처럼 보이겠지요?
오! 주님, 주님을 더욱 드러내고 싶나이다. 주님 도와주세요.

 

<추천사>
“1만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에 몰입할 수 있는가? 10년 동안 꼬박 하루에 3시간을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는가? 만약 할 수 있고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며,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최용우 작가님은 나의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 오게 해주신 분이다. 철학적인 사색을 함께 나누기도 하였고, 깊은 신앙의 체험과 삶의 결단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가정의 아름다움을 공유하였으며, 사명자로서 가야 할 길에 대해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펼쳐 놓기도 하였다. 25년이 넘는 세월을 서로 지켜보는 것은 든든한 버팀목이 나의 등을 받쳐 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최용우 작가님은 나와의 만남 이전부터 한길을 가고 있었다. 전도하는 작가의 길을 주일학교 주보의 4칸짜리 만화로, 교도소의 휴게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들꽃편지로, 매일 메일로 배달해 주는 햇볕같은이야기로, 일기와 시로, 말씀묵상과 경건묵상으로 교역자들을 위한 맞춤주보들로 너무 많아 다 열거 할 수 없지만 본인에게 주어진 전도 작가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
내가 최용우 작가를 만나 삶의 큰 도전을 받은 것처럼,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 멋진 만남을 고대하고 있는 독자 분들에게 그분이 소유한 ‘인생 최대의 행복’을 정중히 권해 드리고 싶다. 

김광현 목사 (로뎀청소년학교)

 

책구입 클릭! <인생 최대의 행복>316쪽 11800원 https://c11.kr/cyw06

 

목차

1부-인생 최대의 행복
2부-사랑 말고 다른 일
3부-보물과 지팡이
4부-생명의 기독교로
5부-불을 붙이자
6부-길을 가는 사람들

 

 

<내용 맛보기>

 

1.인생 최대의 행복

 

부부가 같이 있을 때는 상대방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잘 모르다가 혼자가 되면 비로소 반쪽의 그 소중하고 귀함을 절실히 느낀다고 합니다. 부부는 가까우면서도 멀고 먼 듯 하면서도 가까운 사이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젊은 시절엔 사랑하기 위해 살고, 나이가 들어서는 살기 위해 사랑한다.”
인생 최대의 행복은 돈도 명예도 아닙니다. 부부가 사는 날 동안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친구처럼 살다가 “나는 당신을 만나 정말 행복했어요” 하고 함께 눈을 감을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마무리입니까?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지상에 내려가서 가장 행복한 부부를 찾아보아라.” 하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천사가 지상에 내려와 보니 젊은 부부가 밭에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바라보며 정답게 싱긋싱긋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여 하나님께 보고를 했더니 “더 찾아보아라.”
천사가 보니 아내를 업은 남편이 강을 건너고 있었는데, 남편은 앞이 안 보이는 맹인이었고 아내는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다리가 되어 주고 아내는 남편의 눈이 되어주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하나님께 보고를 했습니다. “더 찾아보아라.”
이번에는 어디선가 통곡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보니 늙은 부부가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어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나쁜놈입니다. 나는 평생 아내를 힘들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했는데도 나를 버리지 않고 살아주어서 아내가 너무 고마워 이렇게 울고 있소.”
아내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잘못하여 남편을 힘들게 했는데도 나에게 용서를 비니 너무 고마워서 울고 있소.” 천사는 즉시로 하나님께 보고를 했더니 하나님께서도 흡족해 하시면서 “그곳에 평화와 행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고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답니다.

 

2.별에서 온 그대

 

천문학자 두 사람이 안드로메다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드로메다 주변에 마치 구름이 낀 것처럼 뿌연 테두리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저게 뭘까?” 하고 질문을 하자 다른 천문학자가 아침에 마누라하고 한바탕 싸우고 와서 기분이 안 좋았던지 “아이고, 우리 마누라 개념이 저기에 가 있네... 저 개념이 돌아오려면 290만년을 기다려야겠지?” 안드로메다 운하는 지구에서 약 290만 광년 거리에 있기 때문에 한번 가면 사실상 ‘실종’이라고 봐야지요.
어떤 분이 그러더라구요.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은 사실은 ‘안드로메다’라는 별에 있다고요. 왜냐고요? 지구상에서 없어진 ‘개념’이 전부 안드로메다에 모여 있어 그 동네는 ‘개념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랍니다. 안드로메다는 290억 광년이나 떨어진 곳에서 지구에 있는 좋은 것들을 끌어가는 것을 보면 좋은 것만 끌어당기는 강력한 파장이 있나봅니다.
자석에 쇠를 붙여 놓으면 그 쇠도 자성을 띠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으면 끌어와서 성질을 변하게 합니다. 인간 세상의 행복과 불행도 행복한 사람 옆에 있으면 덩달아 행복해지고, 재수 옴붙은 사람 옆에 있으면 덩달아 재수 옴붙지요.
그 입이 거칠어서 독사가 독을 뿜는 것 같은 친구를 사귀면 삶이 상당히 고달프고 힘들어집니다. 항상 표정이 밝고 긍정적인 말과 감사, 행복, 기쁨이 넘치는 성격이 밝은 친구를 많이 사귀세요. “그럼 어두운 친구가 외톨이가 되면 어떻게 해요?” 하는 걱정에 어두운 친구를 사귀면 같이 어두워집니다. 그것은 서로에게 더 좋지 않습니다.
저는 가끔 안드로메다 ‘별에서 온 그대’를 만나는데 그때마다 너무너무 행복해집니다. 안드로메다의 좋은 개념들과 좋은 파장들이 막 충전되어 이 세상이 참 행복한 세상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별에서 온 그대’가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3.행복한 가정 십계명

 

 1.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임을 인정하라!
 2.온 가족이 한 믿음으로 한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라!
 3.최소한 가정예배를 일주일에 한번이상 드려라!
 4.말하기보다 듣기를 먼저 하라!
 5.싸움을 할 때는 극단적인 말을 하지 말라!
 6.잠자리를 달리 할 때는 반드시 허락을 받으라!
 7.식사는 기도하고 함께 먹으라!
 8.해 달라고 하기 전에 해 줄 것을 먼저 하라!
 9.가족의 기념일을 기억하고 꼭 축하하라!
10.이웃집과 우리 집을 비교하지 말라!
앞으로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숫자가 2인 이상 사는 ‘가정’의 수보다 더 많아질 것이라 합니다. ‘집’에서 사는 사람의 숫자보다 ‘방’에서 사는 사람의 숫자가 더 많아지는 것은 가정의 해체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셨고 모든 삶의 에너지가 가정에서 나오는 것을 아는 사단은 혈안이 되어 가정을 해체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드시 모여 살아야 합니다. 모여 살아야 ‘사람 사는 맛과 삶의 행복’이 거기에서 우러나옵니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한문으로 사람인 자(人)를 보세요.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떨어져 각각 있으면 삐치(丿)고 모자람(丶)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홀로 독수공방하는 것이 짠해 보여서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함께 살도록 가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나라도 유럽 선진국들처럼 앞으로 하루의 일과는 해 넘어가기 전에 끝나고, 음식점이나 가게는 8시 이전에 문을 닫고, 대형마트나 백화점도 늦어도 9시에는 문을 닫아서 사람들이 일찍 집으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고 이 연사 강력히 주장합니다.


4.행복하게 살기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아주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문, 텔리비전 안 보고 스마트폰도 전화만 되는 피처폰으로 바꾸면 됩니다. 일어나자마자 문 열고 나가 밤새 배달된 아침 신문을 들고 들어와 한 30분 넘겨보면서 열불을 내며 하루를 시작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신문을 주워다만 놓고 보기는 저녁때 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침 시간이 아주 행복해졌습니다.
문자나 카톡이 오면 띵동! 띵동! 카톡! 카톡! 하고 알려주어 핸드폰을 바로 확인하게 하는 것이 하루 종일 손에서 스마트폰이 떨어질 줄 모르게 하는 것 같아 ‘알림’ 기능을 모두 껐습니다. 스마트폰이 조용하니까 손에서 스마트폰이 떨어졌습니다. 스마트폰의 문자나 카톡도 한꺼번에 확인을 하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나를 둘러싼 공기 같은 언론들은 하루 종일 이 세상은 부정부패로 썩었다! 희망이 없다며 이 나라가 곧 무너질 것처럼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심기를 불편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세균과도 같은 언론들을 멀리하면 막연한 불안함에서 일단은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부패한 사회에서 그 부패한 공기에 닿지 않으려면 항상 무고하시고 온전하시고 순결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빛을 받고 예수님의 따뜻한 모습을 보고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면 악이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내 마음이 불안하고, 내 마음이 죄를 짓고, 내 마음이 이 세상에 동화되어 행복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가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주님을 떠나 주님이 내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가득하면 이 세상 쓰레기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주님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5.행복한 기도시간

 

그동안 기도에 대한 글을 많이 써 놓았는데, 책으로 서너 권 정도는 만들 수 있는 분량은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책으로 펴내고 싶은 책은 ‘행복한 기도시간’이라는 책입니다. 이미 수많은 기도 관련 책들이 출판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제가 또 한권의 기도 책을 더하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해야 된다는 것도 알고, 기도의 능력이나, 기도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거나 기도하지 못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쉬운 것 같아도 사실은 매우 어렵고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결심을 하고 기도를 해 보려고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번번이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고, 새벽에 일어나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 하는 것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심정일 때가 많습니다. 청산유수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
그런데 시편 105편 3절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기에서 ‘구한다’는 표현을 영어로 보면 seek입니다. 무엇인가 구하여 찾는다는 의미이니 그것을 ‘기도’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다시 그렇게 바꾸어 본문을 읽어보면 ‘그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마음이 행복할 것이다’
그렇지요. 기도 시간은 괴롭고 힘든 시간이 아니라 가슴 뛰고 설레이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기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과 원리들을 ‘행복한 기도시간’이라는 이름으로 펴내고 싶습니다. 알고 보면 기도의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우리는 별로 재미없는 방법으로만 기도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원리만 알면 기도를 쉽고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하게 할 수 있고, 기도 시간이 설레임 가득한 시간이 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6.세상아 고맙다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습니다.
오늘은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갖고 싶어했던 한 날이며,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처럼 지금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이승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습니다. 올해는 마치 나에게 마지막 한해가 주어진 것처럼 살겠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다 썩은 나라 대한민국이요 안녕들 하십니까? 안녕 못하다고 합니다.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이상한 나라 꼬레아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여기에, 이 나라에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내가 지금 생각한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존 스튜어트 는 “만족하는 돼지보다 부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낫다, 만족하는 멍청이보다 부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본능을 따라 사는 것보다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기쁘고 의미 있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지금 이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내가 지금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
사람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 안에 달려있음을 알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예수를 믿고, 그로 인해 인생 최대의 난제인 죄 문제가 해결되고, 미래에 영원한 안식처가 보장되었으니 이것만 생각해도 웃음이 납니다. 
내가 지금 글을 쓴다는 것이 큰 복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며 살아야 행복합니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내면을 ‘예술’이라는 도구로 표현하기 때문에 삶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합니다. 저는 ‘글’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으니 글을 쓰는 내 삶이 참으로 복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7.용서와 용납

 

이 세상에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에 위배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북한의 김정은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흉악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정기간 그를 격리시키는 것이 그가 또 다른 죄를 짓지 않도록 그를 도와주는 것일 뿐, 그를 용서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사람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다 용서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합니까?
자신의 상처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도저히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삶을 사는 나 자신을 정당화하고 합리화시키는 소극적인 태도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특별한 사람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 그 상황과 처지가 되었다면 틀림없이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 다시 죄를 짓지 않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입니다. 우리들은 단 한사람도 예외 없이 용서를 받아야 구원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 다른 사람들의 용서를 받으려 하지 않습니까?
나의 죄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적치유를 해보면 태아때부터 지은 죄를 가지고 있다가 그것을 토해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죄값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데 왜 그걸 못 믿고 버려도 될 죄책감을 보물단지 모시듯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던 세상을 원수로 갚지 않으시고 용서와 사랑으로 치유하셨습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용서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용서할 때 진심으로 그 용서를 받아들여 사랑으로 화답하겠습니다.


8.사랑하고 사랑받고

 

이 세상에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에 위배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북한의 김정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흉악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사람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다 사랑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만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미워한다면 그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죄’까지 사랑하고 용납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합니까?
자신이 사랑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복음성가가 싫습니다. 교회에서 그 복음성가를 부를 때마다 저는 혼자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고 가사를 바꿔 부릅니다. 먼저 사랑하면 당연히 나도 사랑 받는데, 사랑 받기만을 원하다가 그 사랑을 못 받아서 상처를 받고, 그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에 도저히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생각은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받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누군가의 사랑에 대해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자꾸 사랑을 받아보아야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왜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까?
사랑으로 위장하고 접근해서 나를 속여먹은 나쁜 사람들에 대한 과거의 경험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자기보호’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는 사랑은 상처받을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겠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줄 때 진심으로 그 사랑을 받아들여 나도 역시 사랑으로 화답하겠습니다.


9.겸손

 

행복하여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몇 에이커 쯤 되는 땅을 가꾸며
고향의 공기를 마시는 것으로 흡족한 사람이여!
암소들은 우유를, 밭은 빵을, 양들은 외투를
나무들은 여름에 시원한 그늘과
겨울에는 따뜻한 불기운을 주는 구나
복되어라, 건강한 몸과 평안한 마음에 조용한 하루로
스쳐지나가는 시간들과 날들과 해들을
걱정 없이 바라보는 사람이여!
밤에는 깊이 잠들고, 달콤한 오락과 천진난만에
공부와 안정을 고루 섞어
틈나는 대로 명상을 즐기는구나!
그런즉 나로 하여금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살다가
곡 소리 없이 죽도록, 세상에서 나를 훔쳐내어
나 누워있는 곳을 알리는 돌 하나도 세우지 말아다오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의 ‘겸손’이라는 잘 알려진 詩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조건으로 ‘평화롭고 고요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경제 성장’의 결과로 ‘고요하고 평화로움’ 대신에 오염된 환경과 쌓이는 스트레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핸드폰 소리와, 빵빵거리는 자동차 소리와, 포크레인, 트럭, 경찰자 병원차 싸이렌 소리에 온갖 소음으로 인해 갈수록 육신은 약해지고 정신은 삭막해지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경제성장으로 높은 빌딩을 짓고 그 안에 앉아 있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맑은 공기를 마시고, 땀 흘려 일하며, 정해진 시간에 자연 속에서 고요히 앉아 새소리 바람소리 개울물 소리를 들어야 영적, 육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10.하나님을 떠나서는

 

마음이 우울해지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일부러 ‘기도문’을 펼쳐 놓고 약간 높은 소리를 내서 빠르게 읽습니다. 몇 번 반복하여 읽다보면 배에서부터 어떤 에너지가 차 오르는 게 느껴지고 그것이 입까지 올라왔을 때, 강함 힘이 입을 누르는 것 같이 말이 꼬이면서 부흥사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아. 아, 할~ 렐~ 루~ 이~ 야~)
부흥회를 인도하는 목사님들의 목소리는 깊이가 있고 매우 무겁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게 바로 강한 능력의 기도를 많이 했다는 증거입니다. 별로 기도하지 않는 부흥강사는 뱃심이 없어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마치 공부를 가르치는 것처럼 합니다. 부흥회가 아니고 사경회지요.
옛날 부흥사들은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이 아니고 능력 기도를 많이 한 분들이라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어 하나님의 감동을 전하는데 선수들이었습니다. 괜히 개구리 목소리로 할~ 렐~ 루~ 이~ 야~를 한 게 아닙니다. 뱃심으로 단전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능력의 기도를 하다보면 저절로 할~ 렐~ 루~ 이~ 야~ 그런 소리가 나옵니다.
요즘 부흥사들은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것이 많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머리에서 입으로 유식한 지식이 호스를 타고 줄줄줄줄줄 내려옵니다. 옛날 분들처럼 똥 빠지도록 쎄게 소리 지를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가끔 개그도 한 번씩 해주면 사람들은 빵 터져서 하하하하 호호호호 낄낄낄... 잘 웃고 나면 부흥회 잘했다고 해줍니다.
가슴으로 감동과 눈물을 흘렸던 은혜의 부흥회가 잘 먹고 잘살게 된 요즘은 머리의 지식과 웃음과 개그의 부흥회로 바뀐 것이지요. 세상이 다 바뀌고 변하는데 기독교라고 변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기보다는 어쩐지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기법을 점점 더 의지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씁쓸합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 진짜입니다.


11.바쁘니까 더 기도

 

아침에 교회 가려고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을 때 배터리 경고등이 켜진 후 교회 도착할 때까지 꺼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도착하자마다 계기판마다 빨강불이 번짝반짝 들어오더니 푸르르 시동이 꺼졌습니다.
일단 주일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고 나서 문을 연 가까운 카센터에 가서 물어보니 제네레이션 문제라고 했습니다. 다행이 시동이 걸려서 얼른 카 센타로 갔습니다. 가자마다 시동이 또 꺼져버렸습니다. 예배드리는 동안 배터리가 딱 그만큼  충전이 된 모양입니다.
엔진과 연결되어 전기를 만들어주는 발전기기 고장이 나니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만큼 차가 움직이고는 딱 멈춰섭니다. 차에 전기가 끊어지니 창문 열선도 작동을 안 하고 엉댕이를 따뜻하게 해주는 의자 히터도, 계기판의 표시도, 라이트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에게 차의 발전기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요즘 그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기도가 충분하게 충전이 되지 않으면 삶의 모든 부분이 힘없이 푸드덕거립니다. 열심히 기도해서 기도가 빵빵하게 충전이 되면 삶에 힘과 활력이 넘쳐나고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의 베터리는 차가 멈춰서있는 동안에는 충전이 되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신나게 쌩쌩 달려야 전기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배터리에 충전됩니다. 기도는 바쁠수록, 시간이 없을수록 더 잘됩니다. 여유가 있고 시간이 많으면 더 기도를 많이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요즘 아이들 학교 문제로 기도를 해도 해도 끝이 없을 때인데, 책 만든다고 기도를 조금 소홀히 했더니 하나님께서 당장에 ‘차’를 통해서 빨강 경고등을 빤짝거려 주시네요. 16만원 주고 발전기를 새로 갈았습니다. 심기일전하여 ‘기도 충전’도 다시 시작합니다.

 

12.변호인

 

온 가족이 극장에 가서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에서 지배자들(?)이 주로 ‘법과 원칙’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국보법에 따라...” “국가가 원합니다” 법은 ‘약자 보호’를 위해 작동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법은 항상 힘 있는 자의 편입니다. ‘법 대로’ 라는 말은 ‘힘 있는 순서대로’라는 말과 같습니다. 법이 돈 없고 ‘빽’ 없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동안 법은 항상 지배자의 무기였습니다. 히틀러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법과 원칙’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습니다. ‘법과 원칙’은 힘 있는 자들은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힘없고 가난하고 빽 없는 자들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변호인은 주로 ‘정의와 상식’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정의(正義)란 한문 그대로 풀면 ‘바르고 옳은’입니다. 상식이란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인정하는 보편적인 견해입니다. ‘법과 원칙’ 보다 ‘정의와 상식’이 더 상위법입니다. 정의와 상식아래 있는 법과 원칙만이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가가 기독교인들은 ‘법과 원칙’보다도 ‘정의와 상식’ 보다도 더 위에 있는 ‘하늘의 법’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차원적이고 고상한 법인 ‘하늘의 법’대로 사는 하늘의 사람들입니다.

 

13.축복기도

 

신명기 28장 앞부분은 설교자들이 가장 선호하고 빈번하게 설교하는 본문이고, 뒷부분은 가장 설교하기 싫은 본문입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그냥 읽기만 해도 구구절절 아멘이 절로 나오고 입이 헤벌레 벌어지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랜만에 교회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살아납니다. 그런데, 이런 축복을 받기 위한 한가지 조건은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순종하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효력도 없는 성경구절인 것입니다.


14.기뻐하시는 일

 

해마다 연말이면 작은 교회 목사님들에게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많이 온다고 합니다. 교회에 내는 헌금은 기부금으로 분류가 되어 세금공제를 받습니다. “목사님! 제가 교회에 200만원을 헌금한 것으로 해서 영수증을 하나만 만들어 주시면, 제가 50만원을 드리겠습니다.” 한 푼이 아쉬운 개척교회 목사님들에게는 영수증 하나 만들어주고 50만원이 생긴다는데 이걸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소돔과 고모라로 쳐들어갔을 때, 소돔왕이 두 손 들고 항복하며 말합니다. “아브라함이여! 당신이 이겼으므로 우리의 물질을 당신이 다 가지라” 그때 아브라함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나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실오라기 하나도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왜? 소돔과 고모라는 우상숭배와 음란이 난무하는 더러운 곳이기 때문에 더러운 재물을 가져가서 나 자신과 하나님을 더럽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에게 드리는 예물도 당연히 흠 없고 티 없는 깨끗한 예물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마음 아프게 하거나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서 착취한 돈으로 헌금하여도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남의 것을 훔쳐오거나 빼앗아오거나 사기 쳐서 드리는 예물도 받지 않으십니다. 우상에게 드려진 더러운 돈도 받지 않으십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복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의 삶의 원천이 되시고, 우리의 자원이 되어 주셔서 우리의 모든 필요한 것을 이미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노동을 통하여 합당한 재물을 얻겠습니다. 법을 어기지 않고 깨끗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을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로 드리겠습니다.”


15.선포하라

 

우리교회는 2층에 있고 1층에는 미장원이 있습니다. 미장원에서 키우는 개는 등치는 송아지만 한데 순딩이라서 곰탱이라고 부릅니다.
그 곰탱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아홉 마리나 낳았습니다. 어미를 닮아서 새끼들도 한 등치 합니다. 그런데 개의 젖꼭지는 8개인데 새끼는 9마리이니 언제나 한 마리는 밀려나서 젖을 못 먹습니다. 그러니 요놈들이 태어나자 마자 얼마나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하겠습니까. 한번 어미젖을 물면 놓을 줄을 모릅니다.
어미에게 주렁주렁 달라붙어서 젖을 하도 빠니까 나중에는 곰탱이가 견디지 못하고 새끼들을 우수수 털어버리고 그냥 도망을 치더라구요. 그러면 또 새끼들은 악착같이 따라가고... 에구 저 웬수 덩어리들...
“하나님 아버지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온 세상 기독교 신자들이 한 번씩만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면 아이고... 그 어마어마하게 많은 요구사항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 결제 하시겠습....... 지요?
저는 입만 벌리면 하나님께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이 마치 아홉 마리나 되는 새끼들이 어미의 젖꼭지에 달라붙어서 어미를 뜯어먹는 강아지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시옵소서’ 하고 하나님을 뜯어먹지 않아도 됩니다. 달라고 하기 전에 이미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예수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세’입니다.
권세자는 이렇게 ‘명령’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리 가정에 재정 축복이 임할지어다! 원수 마귀 사탄은 물러갈 지어다! 가난의 영, 빚의 귀신, 카드 마귀는 물러갈 지어다! 질병은 떠나갈 지어다! 남편의 손에 돈을 버는 능력이 임할 지어다! 아이들의 머리가 천재의 머리가 될 지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노니.... 우리교회는 부흥할

지어다! 사람들이 몰려올 지어다! 원수들은 물러갈 지어다! 마귀들은 묶임을 당할 지어다! 문제는 해결될 지어다! 두통 차통 생리통은 멈출 지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노니..... 우리가정에 평화가 올 지어다! 자녀들은 순종할 지어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지어다! 회사는 최대의 흑자를 낼 지어다! 가게에 손님들이 몰려올 지어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하나님을 뜯어먹지 말고 이미 주신 자녀의 권세로 선포하세요! 담대하게 외치세요. 입을 열어 소리를 내는 대로 됩니다. 소리는 그것이 실제가 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16.넓고 깊고 창의적인 생각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수르 광야를 사흘 동안 걸었습니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물도 다 떨어지고 다리도 아프고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 되었을 때, 눈앞에 오아시스가 쨘 하고 나타났습니다. 백성들은 달려가 연못에 코를 박고 물을 벌컥대며 마시다가 그 물이 너무 써서 퇴퇴 뱉으며 대성 통곡을 합니다.
“아이고 우리가 무엇을 마실꼬. 모세야! 그래 애굽에 무덤 자리가 없어서 우리를 이렇게 사막으로 데리고 나와 우리를 사막에 묻으려 하느냐, 왜 이렇게 우리를 고생을 시키냐. 이제 어떻게 할거냐... 앙?” 쓴 물을 토해내며 두 다리 쭉 뻗고 주저앉아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며 울부짖습니다. 그냥 물을 마셔보고 쓰니까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그냥 자빠져서 절망을 합니다.
그때 모세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에 동요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로 아이디어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물에 던져 넣으면 물을 달게 하는 성분을 가진 나무를 가르쳐 주셨고 모세가 나무를 꺾어 물에 던지니 물이 단물로 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물을 마시고 살았습니다.
문제에는 반드시 답이 있습니다. 내가 그 문제를 풀 수 없다고 해서 답이 없는 게 아닙니다. 만약 답이 없다면 그것은 문제 출제를 잘못한 것입니다. 문제가 앞을 가로막을 때, 문제 앞에서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그 문제를 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문제 를 없애주시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빌려 넓고 깊고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통곡을 하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아 보았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수직적인 지혜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17.모든 병의 원인

 

모든 병의 근본 원인은 ‘물’과 ‘공기’에 있습니다. 물과 공기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한 순간이라도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물이 없으면 3일 안에 죽고 공기가 없으면 5분 안에 죽습니다. 
철학의 시조인 탈레스(Thales)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구 표면의 70%가 물로 덮여있고, 인체의 구성요소 중에 70%가 수분이니 몸 안의 물만 모두 빼내도 체중이 70%가 줄어든다는 뜻 아닙니까? 미국국립건강연구원의 호이트 메카티 박사는 “현대인의 질병 가운데 3분의 1은 잘못된 수분 섭취에 따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은 땅으로 스며들어 흙을 통과하면서 정화가 되고 깨끗해지는데 도시의 길바닥은 모조리 시멘트로 덮여있고 아스팔트로 발라져 있으니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 강으로 모이고 그 강물을 다시 퍼 마십니다. 오염된 물이지요.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만물의 근원은 공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온 우리의 조상들은 수려한 금수강산에서 맑은 공기와 더불어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편리함의 대가로 온갖 화학물질로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삽니다.
나무가 울창한 숲속의 산소 농도비율은 23%, 농촌 21%인데 서울의 평균 산소농도는 20.5%, 지하철은 18.5%라고 합니다. 사람의 평균 체온이 36.5도인데 여기에서 2-3도가 높거나 낮다고 생각해 보세요. 산소 1%의 농도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독일의 의사 오토바르크는 세포가 호흡하는 실험을 통해 산소가 부족한 세포에서 암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 노벨 의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을 마시고, 자주 산으로 나가 맑은 산소를 많이 마셔서 몸 속을 깨끗하게 정화시켜야 합니다.


18.레오나르도와 최후의 만찬

 

인류 역사상 최고의 그림은 ‘최후의 만찬’임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습니다. 최후의 만찬(이탈리아어 Ultima Cena, 영어 The Last Supper)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의 후원자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의 요청으로 밀라노에 있는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 수도원 안에 있는 성당의 식당 벽화로 그린 그림입니다.
레오나르도는 1495년부터 7년 동안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은 미완성 그림이 많은데 완성된 몇 안 되는 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레오나르도가 이 그림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들인 공을 안다면 왜 이 그림이 그렇게 가치 있는 그림이 되었는지 공감이 가실 것입니다.
그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쏟아 부은 돈은 엄청납니다. 예수님과 열 두 제자의 모델을 구하기 위해 유럽의 뒷골목과 빈민가를 이 잡듯이 뒤지며 뿌린 돈의 액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님의 모델을 구한 다음 마지막 유다의 모델을 구하기까지 6년이나 걸렸습니다. 잘 아는 이야기로 예수님과 유다는 같은 모델이었다고 하지요. 6년 전에는 예수님 같았던 모델이 타락한 삶을 살더니 6년 후에는 유다처럼 변한 것입니다.
예수님 생존 당시의 음식을 재현하느라 들인 돈도 엄청나다고 합니다. 실제 예수 당시에 생산된 포도주를 구하러 다녔다고도 하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집요하고 대단한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림의 영감을 얻기 위해 예수님이 성찬식을 하셨던 것 같은 그 포도주 와인을 2년 동안 중독이 되도록 마셔댔다고 하니 그림을 부탁한 교황청도 애간장이 다 탔을 것 같습니다.
레오나르도 같은 천재가 그림 하나를 그리기 위해 이 정도 공을 들였다면 천재가 아닌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명품이 되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더 노력을 해야겠습니까? 지금 잠이 옵니까?

 

19.김빠진 콜라

 

아침에 보니 어젯밤 치킨을 먹으며 함께 먹다가 남긴 콜라가 있었는데, 뚜껑을 제대로 안 잠가 콜라의 탄산가스가 다 도망가렸네요. 세상에나... 김빠진 콜라는 정말 먹을 것이 못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김빠진 콜라도 유용하게 잘 활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김빠진 콜라로 고기를 재우면 육질이 부드러워집니다.
김빠진 콜라로 욕실의 찌든 때를 닦으면 때가 쏘옥 빠집니다.
김빠진 콜라로 녹이 슬어 빠지지 않은 볼트를 쉽게 뺄 수 있습니다.
김빠진 콜라를 기름에 쩐 옷에 바르면 기름기를 쪽 빠집니다.
김빠진 콜라로 변기 때를 닦으면 콜라의 시트르산이 때를 없애줍니다.
김빠진 콜라로 자동자 범퍼에 녹이 슨 것을 벗겨낼 수 있습니다.
김빠진 콜라를 먹고 남은 쌈장에 부으면 쌈짱이 굳어지지 않습니다.
김빠진 콜라와 젤라틴, 설탕, 레몬즙을 넣고 조리면 젤리가 됩니다.
김빠진 콜라로 자동차 앞 유리를 닦으면 아주 맑게 됩니다.
그리고 이건 좀 무시무시한 사용법이 될 수도 있는데, 미국 경찰들은 교통사고 현장의 길바닥에 핏자국을 지우는데 김빠진 콜라를 사용한다고 하네요. 어느 나라에서는 시체를 김빠진 콜라로 닦는다고도 하고... 아우, 이제 콜라 다 먹었다ㅠㅠ
우리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김빠진 콜라처럼 별로 쓸모가 없는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새롭게 발견된 우리는 이제 여기저기에 다양하고 유익하게 쓰임을 받는 존재로 새롭게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김빠진 콜라 같은 사람을 ‘전에는 무익하였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 이제는 너와 나에게 유익하므로’(몬1:11, 고후5:17)라고 말합니다. 

 

20.탄생과 죽음

 

수원에 있는 한 호스피스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죽음을 앞둔 말기 암환자 20여분이 계셨습니다. “환자들을 만나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면 안 됩니다.” 원목 목사님이 그렇게 당부하셨습니다. 어제도 한 분이 가셨고 병원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나오는데 또 한 분이 임종을 하셔서 우리를 안내하셨던 목사님은 배웅도 못하고 급히 임종예배를 주관하기 위해 병실로 가셨습니다.
위대한 영성가 이현필 선생은 계명산수도원에서 죽음을 앞두고 “아, 기쁘다. 아, 기쁘다”를 연발하면서 임종하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찬란한 죽음입니다. 이현필 선생은 왜 그렇게 죽음이 기뻤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이현필 선생은 이 땅에서의 ‘죽음’은 저쪽 다른 세계에서의 새로운 ‘탄생’이라는 사실을 아신 것 같습니다. 이쪽에서는 끝이지만 저쪽에서는 시작인 것이 죽음입니다.
생사일여(生死一如)라는 말은 탄생과 죽음이 같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여 이 세상에 왔다가 또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여 저 세상으로 갑니다.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그곳과 죽음 이후에 가는 그곳이 서로 다른 곳이 아니라, 한 곳 즉 자유로운 영(靈)의 세계입니다. 육체라는 유한한 물체에서 해방된 영혼이 무한히 자유로운 곳입니다. “주는 영(靈)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3:17)
그러므로 육체라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삶은 빈부귀천(貧富歸天)이 별 의미가 없는 일장춘몽(一場春夢)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영원이라는 긴긴 시간 가운데 아주 잠깐 지구별에 와서 머물다 가는 것입니다. 이현필 선생이 죽음 앞에서 ‘기쁘다’고 했던 것은 저쪽 세계를 아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도 깊은 기도 중에 아주 흘깃 저쪽세계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을 한 100만개쯤 모아놓은 것 같은 세계였습니다.

 

21.꽃이 필 때

 

지나온 어느 순간인들 꽃이 아닌 적이 있으랴
어리석도다 내 눈이여
삶의 굽이 굽이, 오지게 흐트러진 꽃들을
단 한번도 보지 못하고 지나쳤으니  -송기원의 詩

아침에 일찍 밖에 나와 감나무 아래 주차되어 있는 차를 보면 밤새 땡땡 얼어버린 창문에 하얀 눈꽃이 가득합니다. 마치 벚꽃같이 피어있는 하얀 서리꽃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큰딸이 사진을 찍으며 “차에 꽃이 피었다”고 말을 하니 비로소 제 눈에 꽃이 보입니다.
그 전에는 아침마다 카드로 차 유리를 벅벅 긁어내며 손이 시려워 얼굴을 찡그렸을 뿐 그것을 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도다 내 눈이여’ 꽃을 꽃으로 보지 못하는 내 눈이여.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주변에 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꽃은 계절과 상관없이 장소와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피어있는 것을... 그것도 ‘오지게 흐트러진 꽃들을’ 내 편견과 잘못된 생각 때문에 보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보지 못한 것이 어디 꽃 뿐이겠습니까. 어쩌면 내가 그리도 찾고 있는 성공이나 사랑, 행복, 천국, 만족, 자유 같은 것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내 주변에 ‘흐트러지게’ 피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22.정직하게 살아야

 

국화꽃차를 만들기 위해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10통을 사면 1통을 더 준다기에 그 덤에 대한 유혹 때문에 10통이나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잠깐 기다리세요” 하더니 안에서 다른 통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집에 와서 저울에 무게를 달아보고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들은 10통을 부어 11개의 통에 술렁술렁 담아서 1통을 더 만들어 준 것입니다.
“아니, 신라면이 왜 이렇게 맛이 없어?” 재래시장에서 특별행사 기간 중에 신라면을 거의 반값에 사왔는데, 아내가 이상하게 맛이 없다고 하고 아이들도 라면 맛이 변했다고 합니다. 알고 봤더니 반값에 파는 라면은 몇 가지 재료를 빼고 만들어 수지타산을 맞춘다고 합니다. 라면 한 상자를 다 먹는 동안 라면회사 욕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인간들 마음속에는 남을 속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부패한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공정한 저울과 되를 사용하라는 법을 선포합니다.(신:25:13)
크기가 다른 저울추를 주머니에 가지고 있다가 물건을 살 때는 큰 추로 무게를 재서 더 많은 양을 받아 내고, 그것을 다시 팔 때는 작은 추를 사용하여 적은 양만 주는 불공정 거래를 말라고 합니다.
특히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눈속임을 하면 안 됩니다. 비신자들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배우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는 것은 우리가 저울추를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가 아니면 저울추를 속이지 않고 정직한가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정직하면 기독교도 정직하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속이는 자이면 기독교도 속이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악하고 부도덕하고 부정직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네가 정직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리라’는 말씀을 믿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23.실패와 성공

 

미국의 훼스팅거 교수는 대학입시를 치룬 고등학생들에게 몇 마디 질문을 던져보고 그가 합격했는지 떨어졌는지 100% 맞추었습니다.
훼스팅거 교수는 학생들에게 “시험 잘 보았느냐?”하고 물었습니다. “망쳤습니다. 잘 못 봤습니다. 별로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럭저럭 봤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학생들은 불합격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자신의 실패 요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수학문제가 어려웠는데 1번 문제부터 틀린 것 같습니다. 영어 듣기에서 영어가 거의 귀에 안 들렸습니다.” 자신의 실패 요인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학생은 오히려 합격 확률이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800명을 조사했는데 자신의 실패가 무엇인지를 아는 마이너스 감도가 높은 학생일수록 합격률이 높았다고 합니다.
미국의 행동학자 스키너도 학생들을 50명씩 두 그룹을 나누어서 ‘가’그룹에게는 먹고 입고 놀고 사는데 부족함 없이 무제한의 혜택과 자유를 주면서 공부를 하게 하였고, ‘나’그룹에게는 과도한 제약과 궁핍과 간섭을 하면서 어렵게 공부를 하게 한 후 6개월 후에 그 결과를 비교했습니다. 그랬더니 ‘가’그룹은 활력과 의욕과 성취도가 0에서 - 5로 떨어졌고, ‘나’그룹은 0에서 8로 상승했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성경 안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실패자들입니다. 참으로 읽기에 민망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얼마나 적나라하게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입니다. 실패는 실패인 것 같으나 성공이고, 성공은 성공인 것 같으나 실패입니다. 만약 성경에 성공자들 이야기만 나와 있다면, 성경은 실패한 책일 것입니다. 실패자들만이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경험할 수 있기에 성경은 실패한 것 같으나 결국 실패자처럼 보이는 우리에게는 성공의 책인 것입니다.


24.이스라엘을 보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 ‘재림의 징조’를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졌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입니다.(마23:37-39)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같이 네 자녀들을 모으는 일이 일어나는 순간이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졌다’는 징조입니다. 이 예언은 1948년 5월 14일 유엔이 이스라엘을 독립국가로 승인한 순간 이루어졌습니다.
독일과 터키가 유럽의 패권을 쥐기 위해 서로 연합하여 당시의 패권국이었던 영국을 침략한 것이 세계1차대전입니다. 한참 전쟁이 치열할 때 영국은 화약이 떨어져 거의 패망직전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바이츠만’박사가 화약을 능가하는 화력을 발명해 내 영국은 단숨에 전세를 역전시키고 터키와 독일이 점령했던 땅을 되찾고 오히려 점점 영토를 넓혀갑니다. 거의 다 이긴 전쟁을 유대인인 ‘바이츠만’ 때문에 역전당한 독일의 히틀러는 유태인들을 모두 죽여버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유대인 대 학살이 시작된 것이지요.
영국은 바이츠만 박사에게 승리에 대한 포상을 하고 싶어 했고, 그는 터키에게 빼앗은 팔레스타인 땅을 조금 떼어서 나라를 세우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1900년 만에 이스라엘이 다시 세워져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졌다’는 징조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두 번째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예언은 언제 이루어지느냐? 이스라엘이 “찬송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실 분이여!”(마23:39)라고 할 때입니다. 그때까지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순간’은 이스라엘에서 회개와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 그들이 예수님을 찬송할 때입니다. 가짜 사이비들이 자신이 ‘재림주’라고 사기 치는 것에 속지 말고 고개를 들어 이스라엘에 대 부흥이 일어나는지를 유심히 바라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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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큰소리로 믿음의 고백하기

 

나는 의심하는 자가 아니고 믿는 자 입니다.
나는 믿음을 굳게 갖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깁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눈에서 떠나지 않게 합니다.
나의 죄를 예수님이 대신 사하셨음을 믿습니다.
나의 질병을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셨음을 믿습니다.
내가 건강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습니다.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돕고 나누는 사람입니다.
내가 부요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습니다.
나에게 부요를 주심은 잘 나누기 위해서임을 믿습니다.
나는 각종 좋은 은사가 주로부터 오는 것을 믿습니다.
나의 기도는 반드시 100% 응답됨을 믿습니다.
나는 주 안에서 무슨 일이든 형통(亨通)함을 믿습니다.
내가 손대는 일마다 다 잘 됨을 믿습니다.
나는 나의 믿음과 입으로 고백한 만큼 받음을 믿습니다.
나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이 자유를 주셨음을 믿습니다.
나는 내가 말한 것들이 모두 이루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미 받은 것으로 믿습니다.
나는 나의 지혜가 아닌 여호와의 지혜를 의지합니다.
나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을 합니다.
나는 땅에서 평안하게 살며 무병장수할 것입니다.
나는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 것입니다.
나는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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