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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눈에 띄는 책

참 신앙과 거짓 신앙

by 최용우 2023. 10. 17.

참 신앙과 거짓 신앙

김형익 지음| 생명의말씀사

크리스천북뉴스 방영민 편집위원 서평입니다.

(출처 | 크리스천북뉴스,http://www.cbooknews.com)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신사도운동의 열기는 아주 뜨거웠다. 신앙인의 눈으로 보아도 교회에서 뒤집어지고 쓰러지는 광적인 모습은 교회답지 않았다. 하물며 일반인의 시선으로 비친 그런 교회의 모습과 나타나는 현상은 강한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그들의 집회를 보노라면 그들만큼 하나님을 애타게 찾고 목숨 걸고 기도하는 자들이 없다. 게다가 무대 앞에서 인도하는 목사들은 성령님을 자기 손에 쥐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는 능력의 사람이었다.

요즘 광화문에서 하나님을 죽이는 전광훈 목사의 집회도 여러 번 참석하였다. 갈 때마다 마음이 어두워지고 영혼이 병드는 것을 깊이 경험하였다. 청년 때 섬기던 교회에 와서도 2박 3일 밤낮으로 집회를 하였다. 밤에 모든 불을 끄고 신디 음향을 최대로 높여서 인도하는 집회는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영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성도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두 손을 높이 들고 춤을 추게 하는 곳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다.

이렇게 교회와 신앙에 대하여 괴로워하고 답답해하던 시절, 한 교회의 독서모임을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읽은 책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이였다. 모임 때마다 책을 풀어주시는 목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오랫동안 거짓신학과 신앙으로 죽어가던 내 영혼에 치료의 빛을 받으니 너무 괴로웠고 고통스러웠다. 진리의 빛이 임하니 기뻤다기보다 더러운 것을 진리라는 곳에 몸담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병들어 있던 내 영혼의 상처를 보게 된 것이다.

이후 그 책을 통해 내 영혼은 회복될 수 있었고 시대와 교회와 신학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대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단적인 현상과 일그러진 성령의 역사를 판단할 수 있는 건전하고 바른 기준이 생겼다. 이 시기는 지금도 여전히 나의 신학의 시작점과 전환점이다. 그리고 그 때 나의 신학의 기초가 된 것은 ‘신앙감정론’이었다. 어렵고 두꺼운 신학책이지만 영혼의 생기를 공급해주고 바른 길로 인도받을 수 있는 고전이다.

교회 역사적으로 교회 안에는 가짜가 늘 존재해 왔다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 초대교회만 해도 한 공동체로 같이 살아가던 아나니야와 삽비라의 경우 사람에게 인기와 명예를 얻기 위한 신앙생활을 해오다 결국에는 성령을 속이고 그 혼이 떠나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는 사도라는 직분을 감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유익을 따라 예수님을 따라 다니다가 결국에는 구세주를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에게 팔아넘기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구약 시대에 천상의 어전회의를 다녀왔다고 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전하고 유사복음을 선포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았다. 기도생활을 하고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겉으로 보면 이들의 열심과 열정과 헌신은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그러나 이들의 실체는 하나님을 대면하지 못한 거짓 선지자이다. 신의 능력과 권세로 사람을 미혹하고 넘어지게 한다. 시드기야는 미가야의 뺨을 치며 멸시하고 발람은 백성들에게 저주를 쏟으려고 한다.

예수님도 거짓 선지자는 이리요 도둑이라고 한다. 선한목자장이라고 불리는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이리와 도둑을 먼저 말하며 조심하라는 것은 그만큼 사기꾼이 많았다는 반증이다. 복음서에서 주여 주여 라고 간절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선지자 노릇하고 주님의 권세로 귀신을 쫓아내는 지도자들이 많이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나와 상관없다고 하신다. 등불을 든 열 처녀는 신랑을 밤이 깊어질 때까지 기다리지만 마지막 순간 신랑이 왔을 때 기름이 있었던 다섯 명만 데려감을 당하고 나머지는 버려지게 된다.

실제 교회역사와 성경 속에서 드러나는 거짓 선지자의 정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함께 또 하나의 큰 물줄기로 흘러왔다. 이단의 역사라는 책을 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세력으로 존재해 왔다. 진품명품이 있는 곳에 항상 유사품이 있는 것처럼 참된 신앙이 있는 곳에는 늘 거짓신앙이 존재해 왔다. 그 진품이 더 가치 있고 소중할수록 많은 가짜가 왕성하게 발생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이 가장 귀할수록 사탄은 거짓신앙으로 성도들을 병들게 하여 영혼을 빼앗아 갔다.

김형익 목사님의 ‘참 신앙과 거짓 신앙’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 책을 잘 연구하고 소화하여 성도들의 회심과 신앙성숙을 위해 섬기는 교회에서 설교하신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아무래도 신앙감정론이 270여 년 전 미국 대각성 시기 때 기록된 책이다 보니 한국의 현실과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물론 그 본질과 핵심과 기준은 변함이 없고 지금도 우리의 정곡을 찌른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을 기초로 하여 참된 믿음에 관한 것을 한국적으로 쉽게 잘 풀어 설명한다. 교회 안에서 거듭남과 회심이 희미해지고 약해진 시대에 교회 강단에서 회복해야 될 주제가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 땅을 살며 거듭남과 회심만큼 중요한 주제가 어디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거듭나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를 하고 여러 신학강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현대 교회를 보면 복음의 능력이 희미하고 경건의 모양만 가득하다. 지금까지 현대교회는 다양한 사람의 각양각색의 수준을 맞추어서 사람을 모으기 위한 열심은 가득했고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고 마음을 위로해 주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주었는지 뒤돌아본다. 교회가 이 세상을 섬기는 최고의 방법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생명을 주는 것인데 우리의 관심과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 시대의 변화를 따라 온 것 같다.

역사적으로 날마다 개혁되는 교회의 기준은 문화가 아니라 성경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달라진다고 교회는 문화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았고 성경을 통해 참된 교회를 세워가고 참된 성도를 양육해 왔다. 교회의 변화의 태도 또한 창조가 아니라 회개였다. 교회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어 감동을 주는 곳이 아니라 이삭이 아브라함의 우물에서 블레셋이 막아버린 오물을 제거하여 생수를 얻은 것처럼 변하지 않는 진리로 빛을 비추는 곳이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겠다. 첫째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다. 지금까지 현대교회에서 성도가 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다. 집회에서 강사가 강단으로 초청할 때 앞으로 뛰어나가 손을 들고 입으로 고백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순간 성도가 되었고 천국행 티켓을 확보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었다. 매주 예배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해주셨다고 그리스도의 보혈이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말 한 마디에 회중이 아멘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정해진 날에 주는 세례를 받아도 당신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교적부에 이름을 등록한 것과 생명책에 이름이 올라간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의 표지는 출석과 헌금과 봉사와 신앙의 연수와 직분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거듭남과 회심이 없다면 그는 성도라 할 수 없고 그 일을 수행하시는 성령님의 내주하심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우리의 여러 정체성 중에 하나가 아니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정체성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영광과 명예와 성공을 위해서 살아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주님과 함께 죽음을 경험하고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변화된 자이다. 사도 바울이 자기의 사도직을 변호할 때 예수님을 깊이 경험하고 예수의 흔적을 자랑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철저히 따라가기를 기뻐하는 자이다.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인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우리를 성숙하게 할 것이다.

둘째로 나의 신앙이 참된 것인가를 점검할 수 있다. 모든 은사는 위로부터 난 것인지를 분별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나의 신앙이 참된 것인지 늘 살피고 조심해야 한다. 이단들도 기도하고 기적이 나타나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기독교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따라가는 종교가 아니라 내면의 역사를 따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신앙이다. 그 신앙의 여정 가운데 사탄은 복음을 혼탁하게 하고 여러 가지로 우리를 곁길로 이끌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멈추지 말고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분별하라고 가르친다. 한 번 하늘의 신적이고 거룩한 비추임을 받아도 금세 타락하여 어둠에 떨어질 수 있으니 끝까지 견고하게 믿음의 길에 서도록 자신을 점검하라고 한다. 신앙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며 빛과 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신앙은 치우침이 없고 균형이 있고 견고하다. 신앙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기 쉬운 사람을 하나님중심으로 이끌어간다.

참된 신앙은 거룩한 감정을 동반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한다. 우리는 모두 신앙생활 한다고 하는데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이고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인가? 신앙생활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성적 속성(전능, 전지, 엄위 등)보다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영광, 선하심, 거룩하심, 의로우심, 오래참으심)에 관심을 갖고 이러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닮아가기를 힘쓰게 된다.

끝으로 우리는 누군가의 구원을 판단하고 심판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 속한 영역이기에 인간은 절대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 책은 우리에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도 아니다. 우리의 거듭남과 회심과 구원을 점검하고 바른 신앙을 가짐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기 위함이며 그리스도가 주인되시는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가변적인 인간의 마음과 사람이 처한 환경이 각자가 다르고 복잡하기에 신앙을 이런 기준과 틀로 나눈다는 것이 불편할 수 있고 이런 종류의 책이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갈수록 교회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같고 경건의 모양만 다양하고 신앙은 약해져가는 시대에 이 책은 우리를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하다. 성도는 늘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기뻐하는 사람인데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길잡이가 될 것이고 그것을 위해 기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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