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즘 눈에 띄는 책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베르나르/김재현

by 최용우 2021. 10. 3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KIATS 기독교 영성 선집 4  
베르나르 (지은이),김재현 (엮은이)
KIATS(키아츠)2011-03-20
정가11,000원 144쪽

책소개
2천여 년의 기독교 역사에서 배출된 신앙인들의 삶과 글, 그리고 묵상을 통해 신앙의 본질과 삶의 자세를 알려주는 'KIATS 기독교 영성 선집'시리즈 제4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이 책은 중세 최고의 수도원 영성 신학자가 인간이 하나님이 진실하게 사랑하는 마음과 신앙 자세를 가르쳐 준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중세 수도원에서의 삶과 문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랑 개념은 <아가>와 <시편>을 중심으로 한 성경 해석뿐만 아니라, 수도사들의 실천적인 삶과 신학적 이해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16세기 개신교의 등장 이래 진행된 종교에 대한 합리성과 이성의 도전으로 인해 기독교에서는 ‘사랑’이나 ‘소망’보다 ‘믿음’을 더 강조하게 되었다. 현대 기독교인들, 특히 한국 기독교인들 역시 사랑보다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적인 믿음에서는 성공을 이루었지만 타인과 사회에 대한 배려와 사랑 문제에서는 실패했다는 지적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각박한 현대문명, 위기에 봉착한 한국교회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사랑에 대한 강조를 회복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베르나르의 글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서론 … 7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 21
사랑 … 105
사랑의 세 가지 특성 … 121
참고문헌 … 143

P. 41
이처럼 그리스도를 친숙한 분으로 맞아들이기 원한다면, 우리 마음을 신앙 고백으로 견고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신앙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분의 자비를 믿는 것이며,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그분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이는 다윗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였사오니”. 따라서 이 두 가지 고백은 온전히 믿을 만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고, 우리를 의롭게 만들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셨고,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모든 것을 완성하기 위해 우리에게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죽어가면서 자비를, 부활을 통해서는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여러 행적들을 통해 이 두 가지를 다 보여주셨습니다.  

P. 58
하나님께서는 보상에 대한 생각 없이 사랑받으셔야만하지만, 보상 없이 사랑을 받지는 않습니다. 참된 사랑은 공허해질 수 없으나, 그렇다고 이익을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애정이지 계약은 아닙니다. 사랑은 동의 하에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지며, 우리가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사랑은 내용입니다. 사랑은 사랑의 대상에 대해 보상을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정말로 그 무언가를 위해 사랑을 한다면, 당신은 그 무언가에 대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서 추구하고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먹기 위해 복음을 전하지 않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먹었습니다. 그는 음식이 아니라 복음을 사랑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음에도 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보상은 아직 사랑하고 있지 않는 사람에게도 제공되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자에게서 비롯되며, 인내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사소한 문제로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할 때, 우리는 내켜하는 자들이 아니라 내켜하지 않는 자들을 약속과 보상으로 유인합니다. 누가 하고 싶은 것을 한 것에 대해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그 누구도 배고픈 사람이 먹도록, 목마른 사람이 마시도록, 혹은 어머니가 자궁 안에 있는 아이를 돌보도록 대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구하거나, 혹은 일정한 비용을 지불한다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포도밭에 울타리를 치도록, 그의 나무 둘레를 파도록, 그리고 집을 짓도록 허락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이 하나님 외에 다른 보상을 얼마나 많이 요구하겠습니까? 만일 이것이 그가 원하는 전부가 아니라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P. 91
나는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랑을 ‘흠 없는’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면, 그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것은 무엇이나 정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사랑은 하나님의 흠 없는 법이며,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 외에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그분 자신이 사랑에 따라 살기 때문에 사랑은 주님의 법이라고 불리며, 또한 그 누구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물로서만 주어집니다. 내가 이미 법은 사랑뿐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법에 따라 살고 있다는 말조차 내게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이 거룩한 삼위일체의 형언할 수 없는 그 극상의 일치를 유지하겠습니까? 사랑의 법은 어떤 의미에서 삼위이신 하나님을 평안을 매는 줄로 묶어 일체가 되게 하는 주님의 법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내가 이러한 사랑을 질적인 것으로, 혹 우연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내가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 아닌 무언가가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하는, 정말이지 사라져야만 하는 생각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요한이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말한 것처럼, 사랑은 그 자신 외에는 결코 아무것도 아닌 신적 실체입니다. 참으로 신적 실체는 사랑이고,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사랑을 주고, 실체는 우연을 가장합니다. 그것이 수여자를 의미할 때, 그것은 실체의 이름입니다. 그것이 선물을 의미할 때, 그것은 질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영원한 법입니다. 만물은 이 법칙에 따라 질량과 길이와 수로 창조되었습니다. 이 법칙 외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비록 법이 법에 따라 자신을 창조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법은 여전히 자신을 다스립니다. 그러므로 법은 단지 법이기 때문에 모든 법이 이 법 안에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