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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독서일기

철저한 십자가(토저 시리이즈17)

by 최용우 2023. 1. 10.

철저한 십자가(토저 시리이즈17)

232쪽 12000원 규장 2011

 

1.철저한 십자가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끝장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진정한 추종자들의 옛 생명을 끝장냈습니다. 십자가는 신자의 삶 속에 있는 옛 본성, 다시 말해 아담의 본성을 멸하여 끝장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굴복시키고 우리의 이기적인 삶을 끝장냅니다. 십자가 아래서 끝장났을 때 비로소 신자에게 새 생명이 시작됩니다. 

 

2.보혈의 십자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는 다윗도 믿고 시편 32편에 기록했고, 바울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우리의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 진리 위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림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지워져 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살고 안 믿으면 죽습니다.

 

3.더 깊은 삶

십자가는 우리를 더 깊은 삶으로 인도합니다. ‘더 깊은 삶’은 평균적인 수준보다 훨씬 앞서고 신약의 기준에 더 가까워진 ‘성령 안에서의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의 내주(內住), 하나님을 예민하게 의식하는 것, 기쁨으로 충만한 예배, 세상으로부터의 분리, 기쁨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삼위일체와의 연합, 쉬지 않는 기도입니다. 

 

4.홀로 걷는 성도

성도는 홀로 걸어야 합니다.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외로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향해 고독한 발걸음을 옮기실 때 그분을 따르는 무수한 군중들은 그분의 고독을 조금도 덜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십자가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고독은 성도로 살아가기 위해 지불 해야 할 대가입니다. 

 

5.완전한 헌신

주님은 완전한 헌신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분이 지혜요, 의요, 거룩함이요, 능력이시며 속량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 함께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종속되는 것입니다.

 

6.전부를 십자가에

부분이 아닌 전부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는 충만히 채워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지만 그런 기도를 하는 중에도 교묘한 자기기만이 자리 잡고 있어서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은 것을 남겨둡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높은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마음으로 충만해질 때 비로소 자가에 전부 못 박을 수 있습니다. 

 

7.십자가를 잡는 순간

십자가를 잡는 순간 그것은 자기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는 나의 삶을 철저히 간섭할 것입니다. 무엇을 하기 원하든지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게 됩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자리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삶이 간섭받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8.징계와 십자가

징계를 당할 것인가 십자가를 질 것인가?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義)를 위해 고난을 선택할 때 그 고난은 복이 되며 십자가를 지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사람들의 비난이 ‘근거 있는’ 비난이라면 우리의 고난은 그것은 징계입니다. 징계를 십자가라고 믿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9.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할 구주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찾아서 구원하기 위해 실제로 오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10.자기 십자가

예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나는 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져 줄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내 십자가를 대신 져 줄 수도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려거든 누구든 자발적으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거룩한 길로 나아가느냐, 그렇고 그런 수준에 머물 것이냐 선택해야 합니다.

 

11.옛십자가를 지라

오늘날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새십자가는 세상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며 상스럽지 않고 악의 없는 무수한 놀이와 오락의 근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옛십자가는 세상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았고 아담의 교만한 육신을 끝장내버렸습니다. 옛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이었습니다. 우리는 새십자가를 버리고 옛십자가를 다시 져야 합니다.

 

12.즐거운 가족

가장 바람직한 것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성장한 젊은이가 회심하면 가족 안에 불화가 생기지 않고 오히려 가족의 유대가 강화됩니다. 고령의 조부모부터 가장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구성원 모두가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는 가족을 때때로 볼 수 있는데, 해 아래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13.고난의 유익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고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고난은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을 당하셨고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고통당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아시고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고난은 지옥 고통의 맛보기일 뿐입니다.  

 

14.고난이라는 보물

‘성화(聖化)된 슬픔’이라고 부르는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당하는 고난인데, 그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값진 보물의 원천이 됩니다. 이 타락한 시대에는 자발적으로 어두운 지하로 내려가 보물을 캐려는 사람들이 전무한 시대이기 때문에 그것은 지극히 귀할 뿐만 아니라 보기 드문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15.십자가를 진다는 뜻

한 채석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는 말씀을 오해하여 ‘자기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 스스로 죽은 것입니다. 육신(flesh)은 몸(body)만이 아닙니다. 몸은 육신의 옷일 뿐입니다. 옷을 못 박아봤자 소용없습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자신의 자아를 억제하라’는 뜻입니다. 

 

16.억제와 영안실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자아를 억제하라는 뜻인데 자아를 억제한다는 것은 자아를 죽인다는 뜻입니다. 억제하다(mortify)라는 단어와 영안실(mortuart)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똑같습니다. ‘영안실’은 죽은 사람을 두는 곳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은 나의 자아가 완전히 억제되었다는 뜻입니다.

 

17.십자가의 길

위대한 성도들은 모두 십자가를 잘 알았습니다.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십자가를 체험했으며, 자주 영적으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은 그분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며, 그분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18.심판대 앞에

타락한 인류는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서 있는데, 우리의 복잡한 본성 안에는 선악의 지식, 선을 택할 능력, 그리고 악으로 기울어지는 선천적 성향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의 문제, 도덕적 문제, 공의와 심판의 문제, 상과 벌의 문제를 날카롭게 의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준비를 해야 합니다. 

 

19.살려고 하면 죽어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제가 죽게 하소서. 그래야 제가 살 수 있습니다. 오직 제가 당신의 얼굴을 보게 하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굶주린 마음을 갖고 있는 신자라면 죽고자 하는 어거스틴의 갈망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 중심에는 보좌가 있는데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는 자아가 그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20.안전장치

죽음의 천사를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장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밖에 없습니다. 세상이라고 불리는 애굽에서 우리를 빼내가려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언제라도 임할 수 있기에 우리는 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이 나를 보호합니다. 

 

<독서일기> 책을 읽으면서 한 챕트를 200자 원고지 한 장 길이로 요약하거나, 제 말로 바꾸어서 원고지 한 장 길이로 쓴 것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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